잔인한 나날들의 시작

날씨가 혹독 해졌다. 춥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옷깃을 여며도 칼바람이 파고들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뜨거운 라떼를 찾게 될 때, 베란다의 세탁기가 영하의 날씨를 못 견디고 얼어 버렸을 때 계절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겨울이 온 것이다.

겨울은 도시의 풍경도 바꾼다. 추위에 대비해 이파리를 떨구는 가로수처럼 사람들의 표정에도 웃음기가 가신다. 입을 열거나 표정을 지으면 에너지를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입을 꾹 다문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의 모습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한껏 옷깃을 여미고 팔짱을 낀 채 ‘한파 주의’ 라고 헤드라인이 뜬 뉴스 자료화면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는 “추워야 겨울이지”라고 말하지만, 4계절 중 3계절을 춥다는 말을 달고 살 만큼 추위를 타는 나에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춥다는 건 다른 문제도 동반한다. 추위에 몸이 늘 움츠러들어 있어 어깨가 뻐근하고 소화마저 잘 되지 않는다. 습관처럼 떨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피곤함과 근육통이 함께 몰려온다. 몸이 힘든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줄어든 일조량만큼 기분도 처진다. 차라리 겨울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보송보송한 털로 무장한 채 굴 속에서 겨울잠 자는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겨울이라고 동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껴입을 수 있을까, 매일 아침 고민하며 스타일 대신 보온성을 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뿐이다.

나에게 혹독한 건

바로 나였다

추위에 유독 약하면서도, 스스로를 잘 보살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일기예보에 관심이 없었고 겨울 옷을 살 땐 따뜻함 보다 가격에 더 신경을 썼다. 추운 곳에서 되는 대로 잠들었고 찬바람이 스치면 그대로 감기에 걸리도록 두었다. 매번 콧물과 재채기를 달고 살면서도 겨울이니까 당연한 것이라며 내 몸을 홀대했다. 그저 겨울은, 나에게 혹독한 것일 뿐이었다.

사실 추운 계절은 때때로 찾아오는 힘든 시간과 닮아 있다. 여름이면 불평이라도 하며 그런대로 참겠는데 찬 바람이 불면 잘 견뎌오던 마음도 와르르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무너진 마음을 돌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약해지는 마음을 오히려 더 몰아붙였다. 나조차 돌보지 않던 내 마음은 몸보다 더 추웠을 것이다. 길고 긴 겨울처럼 좀처럼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시련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마음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스스로에게 무관심했던 시간들을 깨닫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돌보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어떻게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서, 일단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다. 드디어 이 겨울을 견디기 시작했다.

겨울의 최전선에서,

온기를 주는 나의 아군들

그 때부터 나의 추위를 덜어줄 아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뜨거운 코코아, 유자차,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수프 같은 것들이다. 오랫동안 따끈함을 유지해 주는 텀블러는 언제나 방한 전선 최전방에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따뜻한 무언가를 수시로 먹고 마시는 것은 추위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움츠러든 몸이 편안해지고 손끝에 온기가 도는 걸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나의 아군들은 양말과 담요들이다. 실내라고 방심 했다가는 집에서도 감기에 걸릴 수 있다. 번거롭더라도 보온양말을 챙겨 신고,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어 체온을 유지해야한다. 따뜻하게 자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즘은 전기매트는 물론이고 온수매트나 난방텐트, 물주머니도 많이 사용하지만 그런 게 없다면 담요 한 장을 더 덮거나 깔고 자는 것만으로도 한결 따뜻하게 잘 수 있다.

한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붕어빵, 군고구마, 호빵 같은 간식거리들은 겨울이 주는 선물이다. 겨울 동안에는 살이 찌는 것도 월동준비라고 생각한다면 다이어트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다. 따뜻한 간식으로 배를 채울 때면 허기를 달랜다는 건 마음을 채우는 것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에 질릴 때쯤 상큼한 귤을 꺼낸다. 귤만은 한겨울에도 차갑게 먹어야 맛있다. 손톱이 노랗게 물들도록 귤을 까먹으며 두꺼운 솜이불처럼 장대한 스토리의 미드나 소설,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 보면 겨울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북부인들처럼 “Winter is Coming”을 외치며 결연히 겨울을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몸을 덥히는 것만큼 정신적인 온기도 필요하다. 추운 날씨에 출근은 잘 했는지,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묻는 안부인사는 마음에 도톰한 옷을 입혀준다. 따뜻한 말이 쓰인 편지를 주고받거나 두꺼운 양말을 선물하는 소소한 나눔도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일이다. 겨울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한기가 들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하는 계절이다. 우리는 혼자만의 체온으로 추위를 날 수 없기에 쓸쓸한 겨울 밤을 밝히는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서로의 마음에 빨갛고 노란 전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아무리 추운 게 밉다고 해도 태양계를 재배치하지 않는 이상 본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추위를 덜어줄 아군들은 이처럼 존재한다. 날씨가 매서울수록 작은 온기들은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니까.

어쩌면

스스로를 돕기 위한

계절일지도 몰라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힘든 시기를 겨울에 비유한다. 다행인 일이다. 겨울은 결국 지나가니까. 계절은 언젠가 끝이 난다는 단순한 사실은 때로 큰 위로가 된다.

겨울과 닮은 시련을 견디기 위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의 시작점이다. 사실 차와 담요 같은 작은 온기들은 겨울을 끝내기에 너무나 미약하다. 어떤 것도 겨울을 이기거나 끝낼 수 없다. 그저 지나가도록 두어야 한다. 긴 추위 끝에 오는 봄도 겨울의 맺음말일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온몸으로 이 겨울을 맞아야 한다. 어차피 겪어야 한다면 나에게 혹독한 계절이 아니라 한 해 동안 고생한 나를 돌보는 계절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겨울만큼 내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계절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돌보자. 체온만으로 부족하다면 나를 도와줄 자기만의 작은 온기들을 찾아보자.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소중히 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작은 것들은 꽤 힘이 세다. 이 겨울을 나기 위해 잠깐의 웃음, 잠깐의 위로, 잠깐의 온기를 모아보자. 아무리 춥더라도, 따뜻한 순간들이 모인다면 어느덧 봄이 올 테니까.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