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임은

결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2019 아시안 컵이 끝났다. 평소라면 우리 팀의 성적만이 최대 관심사였겠지만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팀이 선전한 덕에 축구 열기는 두 배로 뜨거웠다. 그 열기에 나도 스포츠 뉴스 토막을 읽으며 엷게나마 열띤 분위기를 느꼈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가장 익숙한 스포츠로 축구를 꼽을 것이다. 물론 익숙하다고 누구나 잘 아는 건 아니다. 상대 팀의 전력이 어떤지, 오프사이드의 기준이 뭔지 옆에서 아무리 설명해줘도 내가 확실히 구별하고 반응할 수 있는 건 골 아니면 노 골 뿐이었다.

하지만 축구무식자인 나에게도 여운을 주는 경기가 있었다. 베트남과 일본의 8강전이었다. 베트남은 일본에 비해 랭킹이 한참 낮았지만 순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반전 일본선수가 자기 팀 골키퍼에게 공을 주었을 때였다. 보통 같으면 골키퍼가 중앙으로 공을 차며 경기가 재개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베트남 선수가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골키퍼와 선수간의 아슬아슬한 공방이 오갔고, 상황을 파악한 다른 베트남 선수가 달려들어 공을 잡으며 아찔한 슛을 날렸다. 골이 되지는 못했지만 베트남은 전반전 내내 공격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며 일본을 압박했다. 승부는 1-0, 일본의 승리. 베트남은 끝내 일본의 골 망을 흔들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를 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쉽게 여운을 떨칠 수 없어 TV 앞에 앉아 있는데, 경기분석화면이 떴다. 내가 한번도 관심 갖지 않았던 분석표에는 득점보다 많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유효슈팅’이란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록되는 노 골,

유효슈팅

득점하기 위해 공을 차는 행위를 슈팅이라고 한다. 유효슈팅이란 그 중에서도 궤도상 골대 안쪽으로 향하는 슈팅을 말한다. 공이 선수의 발을 떠난 순간에는 골이 될지 노 골이 될지 알 수 없다. 골키퍼나 수비수가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골대 안쪽으로 향한 공은 일단 모두 유효슈팅이다. 유효슈팅이 승패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종종 경기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유효슈팅을 해야 득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쉽게 빗나간 슈팅은 결코 헛발질이 아니었다. 실패했지만 가능성이 있던 노 골의 다른 이름은 ‘유효슈팅’이었던 것이다.

문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A가 떠올랐다. 많은 공시생들처럼 그 역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아침마다 도서관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저녁마다 도서관 창 밖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볼 때 펜을 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불과 얼마 전 취업준비를 위해 매일같이 카페로 출퇴근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 때의 나는 집과 카페 말고 저 많은 회사 중에 내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자소서를 썼다. 매일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며 앞날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 노력이 과연 유효한 것일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불안함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되돌아봤을 때 노력조차 안 한 나로 기억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목표를 두고 성공 혹은 실패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득점보다 실점할 확률이 더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삶을 하나의 긴 경기로 본다면 잘 살아낸 오늘이 내 삶의 유효슈팅으로 카운트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찬 발길질이 흔적을 남기듯, 온갖 걱정과 부담을 접어두고 묵묵히 노력했던 흔적은 삶에 어떤 식으로든 무늬를 남기지 않을까.

오늘도

신발끈을 고쳐 묶는

A에게

얼마 전 만난 A는 울상이었다. 그는 시험을 앞두고 막 원서를 접수한 참이었다. 지역마다 경쟁률이 달라 원서를 어디에 넣느냐가 중요했는데 다행히 그는 눈치싸움에서 승리한 것 같았다. 그가 지원한 지역이 전에 없이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 경험 삼아 보려고 했던 건데 너무 낮은 경쟁률이 그에게 희망고문이 된 것이다. 주변에서는 이런 속내도 모르고 벌써 축하를 건네고 있었다. 주변의 기대와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A는 지나온 시간까지 곱씹으며 자책하고 있었다. “다시없을 기회가 코 앞에 있는데 손이 딱 요만큼 짧아서 닿을 수가 없어.” 결국 A는 눈물을 보였다. 차라리 맨 땅에 헤딩할 때가 속 편할 때가 있다. 일말의 희망을 잡고 놓칠까 두려워하는 시간이 더 괴로운 법이니까.

어차피 안 될 시험을 준비하며 A가 의욕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아침에도 도서관에 갔다. 하루, 이틀, 괴로운 마음은 괴로운 대로 두고 늘 하던 대로 다시 신발끈을 고쳐 묶었다. 그리고 얼마 뒤 홀가분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결국 불합격했지만, 원래 자신의 성적보다 조금 더 오른 성적표를 들고서. 마음의 폭풍을 이겨낸 A의 눈빛은 한결 단단해져 있었다.

A는 결국 합격이란 골을 넣게 될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두려움을 떨쳐가며 노력했던 매일은 분명 그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돌아봤을 때 노력이란 돌로 만든 단단한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당장 골을 넣지 못하면 어때. 승패와 상관없이 열심이었던 그의 오늘은 유효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골도 한 두 번 넣겠지. 누가 알까, 당장 합격하지 못해도 인생이란 긴 경기에서 결국 이길지. 혹시 지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졌지만 잘 싸운 경기는 그것만으로도 열광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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