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라는 작은 세상

매일 아침 혹은 저녁 누군가는 학교에 다녀오기 위해, 누군가는 직장에 다녀오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무표정으로 버스 카드를 찍고 의자에 털썩 앉는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버스 앞 행선지 안내판 안쪽에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있다. 백발의 버스 기사가 젊은 시절 군대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 다음 날 탄 다른 버스에는 기사의 손녀가 붙여준 듯한 아기자기한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고, 그 다음 날의 버스에는 컵라면과 일회용 나무젓가락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의 삶이 곳곳에 놓여있다. 그 짙은 무게를 마주한다면 모른 척 지나치기는 쉽지 않다.

버스 운전은

마음을 비우는 것

버스 기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승객들이 오르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 방향으로 계속 인사를 하면 목이 굳고 몸이 피곤해지는 것은 일상이다. 승객들은 거의 답을 해주지 않는다. 대꾸 없는 승객들의 반응은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버스 기사의 인사가 운전이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으로 돌아올 때는 입이 쓰다.

버스 기사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승객은 ‘취객’이다. 술에 취한 승객이 시비를 걸어오면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하다. 다른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밤손님을 얼른 목적지에 내려 주기 위해 핸들을 꽉 붙잡고 달리는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밤손님이 버스에 토를 하게 된다면 손수 치우는 것도 버스 기사의 몫이다.

종종 버스 기사가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뉴스에 나오는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 버스 기사들은 승객에게 폭행을 당해도 대부분 침묵한다. 친절기사로 소문난 어느 버스 기사도 승객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버스 운전석 좁은 공간에서 목적 없이 휘두른 주먹을 피할 길은 없다.

버스 기사에게 필요한 덕목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버스에 올라 도로를 달리는 순간부터 긍정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세상 근심 하나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하루 18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가끔씩 찾아오는 진상 승객들을 마주할 땐 긍정왕도 도리가 없다.

불친절 기사가 되는 이유

승객들의 갑질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버스 기사들은 마음에 화가 쌓인다. 꽉 막힌 도로에선 답답함을, 버스 안에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의 말소리와 흔들리는 몸짓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운전에 집중하고 싶은 버스 기사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교통 상황의 변수라도 생기면 노선 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 기사는 더욱 빨리 가게 된다. 시민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정류장 무정차, 급출발, 과속 등 난폭운전이 이런 이유로 생긴다.

“이 버스, OO역 가요?” 초행길에 버스 기사에게 행선지를 묻는 사람이 있다. 혹시라도 버스를 잘못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초행자는 하루 한 번의 질문이지만 버스 기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버스를 타는 초행자들에게 같은 대답을 한다. 승객들은 이미 다 승차했는데 버스를 탈지 안 탈지도 모르는 초행자에게 대답을 해주느라 시간이 늦어진다. 뒤에 선 차도 왜 출발을 안 하냐며 버스 기사를 재촉한다. 이쯤 되니 버스 기사는 질문에 대꾸를 안 하거나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버스 안밖으로 여기저기 스트레스를 충전한 기사는 불친절해지고 만다. 이런 사정을 세세히 모르는 승객들은 당연히 버스 기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쌓일 수밖에 없다.

오늘도 무사히

버스 기사는 교대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운전을 하게 된다. 5분의 휴식 시간도 갖기가 어려워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오랜 시간 참는 게 비일비재하다. 법적으로 기사들의 휴식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버스 기사들의 근무시간이 개선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버스 기사는 노선 운행의 효율을 위해 운전하는 게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우선으로 놓고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 버스는 시민들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한 대중교통 서비스가 이루어지려면 우선 버스 기사의 근로 환경이 바뀌어야 시민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의 애환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나 하루하루가 고단한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할아버지일 버스 기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운전대를 잡고 승객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 안에는 버스 기사의 삶도 함께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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