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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잇는

고소한 공간

시대가 변할 때 가장 빨리 사라지는 것은 낡은 것들이다. 빠른 세상의 시간에 무딘 골목길의 담장도 무너진다. 갈 곳 없이 옹기종기 모여 정을 나눈 변두리 시장도 사라져 버린다. 시대의 변화에 견디지 못한 낡은 것은 뿔뿔이 흩어져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희동 홍제천로 앞 홍연시장도 사라져가고 있다. 골목길에 있던 오래된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주민들이 떠났다. 재개발 단지 옆 자투리땅에는 1980년 초부터 노부부가 운영하던 참기름 집이 남아있었다. 김장 때가 되면 고춧가루를 빻았고, 제철에 나온 참깨로 만든 참기름은 가난한 시절 부족한 식탁 위에 고소함과 더불어 웃음을 더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상권 변화로 재래시장에서 참기름을 찾는 사람들이 뜸해지자 30년 동안 참기름 하나로 생계를 유지하던 노부부는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그때 이곳의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2015년

가을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참기름 집을 맡았다. “한때 홍연시장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새벽부터 참기름을 짜며 고된 하루를 묵묵히 보내는 두 분이 살아왔던 흔적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옛 것을 살려

다시 정을 잇다

이곳에 가면 글씨가 떨어져 가는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안에서는 30년 동안 전통압착방식 참기름 제조 기계와 볶는 기계들로 참기름을 짜내고 있다. 되도록 옛것을 그대로 지켜가며 운영하려 했지만, 한때 고춧가루를 빻았던 방앗간 기계는 좁은 공간과 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필요로 하는 다른 분에게 나눔으로 드렸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주말 아침마다 열었던 문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녹이 슬고 뒤틀려 휘어져 어쩔 수 없이 튼튼한 문으로 교체해야만 했다.

문이 바뀐 후 종종 주변 사람들이 카페인 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온다. 경성참기름은 참기름을 짜는 역할에 충실하며 옛것과 문화를 전달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참기름 직접 짜서 이웃들에게 믿을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나누며, 이웃들이 모여들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어 고소한 참기름처럼 마을 사람과 마을 사람의 정을 잇는 공간이고자 한다.

다시 살아나는

동네 골목길

문화 방앗간

경성참기름은 이웃들에게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나누고 이웃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문화 방앗간으로 재탄생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동네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진행했다.

‘1만 원의 밥상’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네 청년들이 1만 원 상당의 식재료를 사서 직접 음식을 만들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차명상 교수님의 ‘차 문화 교실’ 강좌를 열어 차 예절과 차 문화에 대해서 배우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16년도에는 이웃 주민들과 ‘車 없는 골목, 茶 있는 골목’이란 동네 장터를 개최했다.

그 후로 경성참기름을 중심으로 인적 끊긴 골목길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짐이 무겁다며 집으로 직접 참기름을 가져 달라던 어르신 덕분에 무더운 여름날 언덕을 오르며 땀 흘렸던 일, 일손이 부족했던 날 참기름 포장을 도와주던 정겨운 이웃들로 경성참기름은 동네 사람들과 소소하게 고소한 참기름처럼 정을 이어 나가고 있다.

정과 정을 잇는

경성참기름

경성참기름을 운영하는 분들은 본 직업이 있어 주말에만 문을 열고, 가끔 평일에 손님이 찾아올 때면 건물 주인이 내려와 참기름을 팔아 주고 계신다. 어느 날 갑자기 참기름 집 앞에 놓인 예쁜 화분이 사라져 동네 이웃이 블로그에 사라진 화분을 찾는 글을 올려 주기도 했다. 차 문화 교실로 마음이 안정되어 감사 편지를 전해주었던 이웃 청년도 있었다.

옛것을 동네 안에서 지키려는 경성참기름은 현재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어 주민들이 직접 참기름을 짜고, 동네 재주 많은 청년들의 작업실로 이용되고 있다. 이웃 주민들이 언제나 편히 차 한 잔 마시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작은 골목길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이웃들의 따뜻한 정을 나누며 경성참기름은 좀 더 나은 참기름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다.

옛 것을 살려 다시 정을 잇다, '경성참기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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