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로 창문을 열어 두기 힘들다. 창문을 열어도 볼 수 있는 자연 풍경은 없다. 하지만 가끔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새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도시에서 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도시를 벗어나는 방법에 없다. 막상 벗어난 환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자연보다는 도시의 부산물들이 자연 속에 버려진 채로 놓여 있는 광경을 볼 때가 많다.

우리가 아름답게 보는 자연은 사람의 손으로 관리된 자연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정원의 시작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정원의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역사학자들은 삼국사기에 실린 문헌을 통해 고구려 궁궐 건축에 이미 정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자연이나 신에 대한 숭배 사상이 깃든 일본식 정원과는 달리 인공적인 건축물에 자연적 미를 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찍이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보는 도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정원에는 오묘한 자연의 이치가 숨겨져 있다. 정원을 만들 때는 서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며 음양오행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인은 땅의 모양이나 생김새를 고려하여 정원을 맞추고 차는 건축물 간의 적당한 배치가 정원의 경관과 조화가 돼야 한다.

그래야 집터에 있는 정원은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도 자연에 속한 한 부분으로 보여 일본의 정원처럼 제약과 규칙으로 만든 인공적인 정원과는 다른 자연의 순수함과 아름다운 운치가 살아난다.

경복궁 교태전 후원에 가면 물확(크지 않는 돌을 가공하여 큰 홈을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돌절구로 쓰인다)에는 연꽃 잎사귀로 돌 그릇의 모양을 형상화시켜 놓고 윗면 네 곳에는 개구리가 한 마리씩 새겨져 있어 경복궁 곳곳을 거닐며 옛 시절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한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이 주는 최대의 자연미를 가까이 두고 살아왔다.

조선 중기 문신인 고산 윤선도는 병자호란 때 제주도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전라남도 완도 보길도에 들어왔는데 보길도의 자연 풍경에 반했다. 계곡의 동북쪽에는 ‘세 연장’을 세우고,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곡수당”, 그리고 세연지를 지나 1킬로미터 부용동을 향해 걸어 들어가면 격자봉과 마주한 골짜기에는 동천, 하늘로 통하는 곳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보관하는 ‘동천석실’을 만들었다.

고산 윤선도는 자연을 벗 삼아 보길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아름다움 변화와 어부 생활의 흥겨움을 표현한 ‘어부사시사’ 시조를 지었으며 자연과 함께 지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과 함께한 선조들의 삶과 달리 자연이 사람을 떠나고 있다. 사람이 떠나야 생태계가 회복된다고 한다. 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도심으로 이주하자 마을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자연을 지키는 일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미세먼지 주의보로 밖에 나가기조차 걱정되고 거리에 나가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환경에 대한 불안감은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는 한 철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철학적 명언에 빗대어 말한다면 한 지성인의 지식이 무용할 정도로 자연은 우리와 함께 있었고 자연이 주는 혜택은 사람의 생명 가치와 동일하다.

자연과 함께 살아왔던 선인들이 자연을 사랑했던 마음과 자연과 함께한 뛰어난 지혜와 가치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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