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주는

아름다움의 이면?

자연은 조용히 침묵한다. 묵묵히 하늘을 향해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겨울이 오면 나무의 견고함으로 서 있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편리함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며 곁에 있다. 봄이 와도 마당에 놓여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이 꽃을 피기 전까지 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길에서 봄꽃이 피고 질 무렵 좁은 마당에서 들어온 빛들을 한 올 한 올 빛을 받아 꽃피울 때 마치 죽어 있던 마른 나무들의 가지에서 초록이 피고 드디어 꽃이 필 때 “너도 살아 있었구나”라는 생명의 감탄을 내뱉으며 무관심했던 시선이 다시 자연이 주는 생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거리 곳곳에 심어진 봄꽃들이 화창한 봄기운을 자랑한다. 그동안 몰랐던 나무의 이름을 봄꽃들이 증명해 주듯 이름 모를 나무에서 봄꽃들을 피워내며 나무의 이름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봄을 위해 산으로 꽃이 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 봄날의 추억을 사진에 담고 마음속에 담으며 흘러가는 봄날과 함께 봄을 즐긴다.

봄 동안 찬란하게 핀 꽃들은 봄이 지날 무렵까지 꽃으로 아름다움을 피워내며 아름다움을 버린다. 눈으로 바라보던 꽃의 아름다움이 땅으로 떨어져 사람들 발에 뭉게진다. 백색의 얇은 목련의 잎들은 누렇게 시들어 봄의 아름다움을 상실하면서 쓰레기고 방치되고 치워야 하는 골칫거리가 되어간다.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

주인 없는 가로수들은 몸이 되면 한 철 내내 뻗은 가지가 전신주에 닿아 화재를 일으킨다고 냉혹한 미화작업의 톱날에 잘린다. 풍성한 초록이 담긴 나무가 아닌 기형적인 몸통에서 다시 잎과 가지가 뻗어 추한 모습으로 도로 옆에 놓여 매연을 들이 마시며 도망가지도 못 한 채 그 자리에 있다.

자연의 경계를 넘어 도시로 옮겨온 자연들이 사람들에게 당하는 수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 또한 좁은 마당에 옹기종기 있던 나무와 꽃들을 다듬고 키우는 보람을 느껴 왔지만 가족들이 좁은 골목길에 차를 주차할 수 없다고해서 좁은 마당을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나무와 꽃이 심어진 흙은 다 파헤쳐 진 후 그 위로 시멘트가 덮였고 지금은 주차장 한 귀퉁이에 간신히 한 그루의 봄철 나무가 심어져 있다. 봄이면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는 것이 자연적 본능이며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담장 밖으로 뻗은 가지를 볼 때마다 나무의 기특한 성장보다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이웃집 연립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자신의 담벼락 안쪽으로 떨어진 낙엽을 치우면서 쓰레기봉투 값이 아까워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며 쓸어 담은 낙엽을 놓고 간다. 볼멘소리로 낙엽을 치우는 일이 불편하다는 속내를 드러내면서 우리 집 나무가 창문을 가린다고 가지를 쳐 달라고 요구한다.

그 순간 이웃집의 불편함에 대한 생각이 견고해 도시에 나무를 가꾸는 일이 마치 잘못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불편한 마음으로 나무에서 떨어진 축축한 낙엽들을 곱게 펴서 햇살에 말려 태운다. 혹시 낙엽에서 나는 연기로 이웃과 작은 다툼이 있을까 조심하면서 천천히 타오르는 낙엽에 연기가 나지 않도록 이리저리 뒤적이며 낙엽을 태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낙엽 타는 냄새와 연기가 난다.

짧게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보고 어떤 주민이 불이 났다고 신고할까 봐 걱정이 드는 마음에 재로 거름을 만들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낙엽이 다 타기도 전에 물을 뿌려 끄는 내 모습을 볼 때 과연 도시 안에서 자연을 키우고 보는 보람보다 키우는 불편함이 먼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자연을 떠나 도시로 올 때부터 초록의 눈으로 이 불편함과 갈등을 지켜보면서 사람들 곁에서 묵묵히 생존하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 있고 싶은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가꾸기 위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도시 안에서 자연을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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