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주는

다른 의미

아침에 일어나면 수많은 말들이 우리 곁에서 기다린다. 어제와의 모든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싶을 정도로 나와 연결된 이 메시지들은 나를 깨우고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스마트폰에 맞춘 알람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계속해서 울리며 오늘 하루를 규칙적으로 시작하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에 다운된 수 십 개의 애플리케이션은 업데이트가 됐다며 빨간 숫자로 나를 쳐다보며 눌러 주기를 기다리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심지어 일요일에도 일방적으로 도착하는 뉴스 앱 알람은 눌러 주기를 기다린다. 메일 확인을 위해 접속하면 내가 읽어야 할 메시지 대신 나와 상관없는 수 백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 바로 휴지통으로 이동시킨다.

웹과 소통하는 손안에 쥔 이 작은 스마트폰은 전화의 소통을 넘어 디지털 접속을 우리에게 허용한다. 이 정보의 편리함을 손에 서 꼭 쥐고 허용한 우리는 소통과 정보를 포기하지 못하고 편리함이 주는 관계의 익숙함에 빠진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정보에 접속하여 참여하고 소통한다.

주인 없는

말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물음과 말 대신 이곳에서는 내뱉으면 끝나는 단절된 소통의 일방적인 주인 없는 말들이 떠돈다. 귀찮고 나와는 상관없는 알람이 스마트폰에 켜져 있듯 익명으로 적어 놓았던 너무나 많은 말들은 지금 웹에서 누구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있다.

누구의 기대도, 누구의 반응도 고려하지 않는 말들은 나의 얼굴과 감정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숨긴 채 웹에 참여하여 복잡성에 복잡함을 더해가며 서로의 생각을 논리의 오류로 비방하면서 타인의 생각들을 파편화 시키고 무력하게 만든다.

특히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 사건과 사고의 인물들은 다시 웹에서 이슈가 되고 참여한 사람들이 다시 이유를 만들어 냄으로 지속적인 피해와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객관성과 증명 가능한 논리는 너무나 많은 말에 자취를 잃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문으로 번져 한순간에 트래픽을 일으킨다.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라 또다시 우리를 유도한다. 웹은 우리의 반응에 무너지지 않고 더 견고해지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학습하면서 참여의 바탕에서 성장한다.

소유의 개념이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소유하지 못한 채 사용만 하는 웹은 친구들 다음으로 많은 말들을 적거나 내뱉는 공간이 되었다. 구텐베르크 활자가 인쇄되어 지식이 전달된 이후 전 세계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심에서 너무나 많은 말들과 인류의 지식을 전달할 수 미디어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웹은 참여가 없으면 오염된 서식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웹 생태계의 끊임없는 활성을 위해서는 참여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 했다. 수많은 기능과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기능적 요소를 생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또한 소유의 개념이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웹의 특징을 새롭게 정의해 나아가면서 참여자의 도덕적 참여만을 기대하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한 웹 기술과 함께 축적된 데이터는 참여자의 취향을 알기 위해 참여자 정보를 스스로 분석하고 연결한다. 취향에 맞는 정보를 찾아 주기 위해 우리 생활 깊숙이 다가오고 있다. 티브이 시청보다 유튜브 시청으로 개인이 생산하는 미디어에 영향을 받는 2010세대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여세대가 남긴 부유물이 아닌 지식으로 만든 정보를 웹에 남겨 놓아야 한다.

자신의 주관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수많은 코멘트의 빈 창들은 복잡한 소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힘을 믿고 우리의 도덕적 참여로 사회에서 간과된 진실된 발언을 알리기 위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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